
들어가는 말
부부상담을 하다 보면 “남편이 집에 오면 휴대폰만 봐요”, “아내는 사소한 일에도 계속 잔소리를 해요”, “결국 같은 문제로 또 싸웠어요”라는 이야기를 자주 듣습니다.
부부갈등의 소재는 집안일, 돈, 육아, 늦은 귀가, 시댁과 처가 문제처럼 다양합니다. 그런데 상담에서 갈등을 조금 더 깊이 살펴보면, 표면에 드러난 사건뿐 아니라 그 아래에 있는 감정과 관계의 의미가 갈등을 지속시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서중심부부치료에서는 두 사람이 반복해서 상처를 주고받게 되는 방식을 ‘부정적인 상호작용 패턴’이라고 설명합니다.
부부싸움에는 어떤 감정이 숨어 있을까요?
아내가 “왜 이렇게 늦게 들어왔어?”라고 묻고, 남편이 “일하느라 늦었는데 왜 또 그래?”라고 반응하는 상황을 생각해보겠습니다.
겉으로는 늦은 귀가를 두고 싸우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아내의 마음에는 “당신에게 나는 중요하지 않은 사람 같아”, “나를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아”라는 서운함과 외로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남편의 마음에는 “가족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인정받지 못한다”, “또 비난받는 것 같아”라는 답답함과 상처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마음은 그대로 표현되지 못하고 화, 짜증, 비난, 방어 또는 침묵으로 나타나기 쉽습니다. 결국 두 사람의 진짜 마음은 전달되지 않고,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반응만 반복됩니다.
겉으로 드러난 감정과 그 아래 감정
정서중심부부치료에서는 겉으로 드러난 반응과 그 아래에 있는 보다 여린 감정을 구분하여 살펴봅니다.
상황에 따라 화는 자신의 경계를 지키는 일차적인 감정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부부갈등에서는 화와 비난 아래에 외로움, 두려움, 서운함,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자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 맨날 늦게 와?”라는 말의 아래에는 “당신과 멀어질까 봐 불안해”라는 마음이 있을 수 있습니다. “또 시작이네”라며 대화를 피하는 행동 아래에는 “무슨 말을 해도 내가 잘못한 사람이 될 것 같아 두려워”라는 마음이 있을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이 겉으로 드러난 반응만 주고받으면 서로의 진짜 마음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추적자와 회피자의 악순환
부부갈등에서 자주 나타나는 패턴 중 하나는 한 사람은 계속 대화를 시도하고, 다른 사람은 점점 말을 줄이며 물러나는 방식입니다.
한쪽이 “우리 대화 좀 해요”라고 다가가지만 상대방이 “지금은 피곤해”라며 피하면, 대화를 원하는 사람은 더욱 불안하고 답답해집니다. 그래서 더 강하게 따지고 확인하려 합니다. 반면 상대방은 비난받고 있다고 느껴 더욱 침묵하거나 거리를 둡니다.
정서중심부부치료에서는 이를 추적자와 회피자의 패턴이라고 부릅니다.
추적자는 관계를 포기하고 싶지 않아 계속 대화를 시도하고, 회피자는 싸움이 커지거나 관계가 더 나빠지는 것을 막으려고 물러날 수 있습니다. 두 사람 모두 관계를 지키려는 마음이 있지만, 서로 다른 방식이 만나면서 결과적으로 관계의 거리는 더 멀어집니다.
갈등 속에서 부부가 원하는 것
부부싸움의 깊은 곳에는 “나는 당신에게 소중한 사람인가?”, “힘들 때 당신은 내 마음을 이해하고 반응해 줄 사람인가?”, “우리 관계는 안전한가?”라는 질문이 숨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관계가 불안해질수록 우리는 이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기보다 화를 내거나, 비난하거나, 침묵하며 상대방을 밀어내기도 합니다. 그러면 배우자는 그 행동만 보고 마음속의 바람을 알아차리기 어렵습니다.
맺는말
부부갈등을 해결하려면 누가 옳고 그른지를 가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서 반복되는 악순환을 알아차리고, 그 아래에 있는 감정과 관계에 대한 바람을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왜 또 그래?”라는 말 대신 “당신과 멀어지는 것 같아 서운하고 불안했어”라고 표현할 수 있을 때, 대화는 비난에서 이해로 조금씩 움직일 수 있습니다.
부부싸움의 핵심은 눈앞의 문제를 빨리 없애는 데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갈등 속에서 서로의 마음을 발견하고 다시 연결되는 데 있을지도 모릅니다.